유리천장 깬 지휘자 성시연 "음악에 시대의 고민 담겠다"

입력 2021-10-10 17:15   수정 2021-10-11 00:14


2017년 영국의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자 50명을 발표했다. 그중 여성 지휘자는 없었다. 1930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미국 지휘자 안토니아 브리코와 예술가들의 ‘대모’라 불리던 작곡가 겸 지휘자 나디아 블랑제도 명단에 없었다. 백인 남성들이 쌓아올린 금녀(禁女)의 벽이 높이 30㎝의 포디엄(지휘대)을 에워싼 것. 지휘자 성시연(46·사진)이 그 ‘보이지 않는 벽’을 뛰어넘었다.

성시연은 다음달 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로열콘세르트허바우오케스트라(RCO)를 지휘한다. 한국인 지휘자로선 정명훈에 이어 두 번째다. RCO는 베를린필·빈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3대 악단으로 불리는 오케스트라다. 성시연은 내년 7월 1일에는 독일의 명문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BRSO)도 이끌 예정이다. 지난 6일 독일 베를린에 머물고 있는 성시연에게 전화를 걸어 소감을 물었다.

“동경하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돼 정말 기쁘고 떨립니다. 막상 다음달에 리허설을 하면 담담하게 임할 겁니다. 지금부터 마음가짐을 다잡아놓으려고 해요.”

그는 RCO와 함께 중국 작곡가 탄둔의 신작 ‘비디오 게임 속 세 뮤즈’를 세계 초연한다. 당초 탄둔은 직접 지휘대에 올라 신곡 두 개를 선보이려 했으나 코로나19로 일정이 꼬여 성시연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공개할 곡도 하나로 줄였다. 탄둔의 신작 외에 윤이상의 ‘무악’과 벨라 바르토크의 ‘중국의 이상한 관리 모음곡’도 선보인다. 그는 “자연스러운 음악을 추구하는 공연이라 윤이상 선생님 작품이 어울릴 거라고 판단했다”며 “이국적인 색채를 내는 데도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선택한 두 곡은 모두 지휘하기 까다롭기로 이름난 작품이다. 화성이 기괴하고 연주 방식은 낯설다. 윤이상의 무악은 한국 무용의 정적인 춤사위를 관현악으로 풀어냈다. 바르토크의 곡은 전자 피아노와 4대의 마림바, 각종 타악기를 동원해 기묘한 선율을 뿜어낸다. 지휘하기 까다로운 현대음악에 도전한 이유는 뭘까. 그는 “현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을 무대에 구현하는 건 지휘자의 책무”라며 “잘하고 좋아하는 작품만 연주하면 클래식은 박물관에 박제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시연의 도전 정신은 그를 향한 냉대를 뚫어냈다. 동양인 여성 지휘자라는 한계를 극복하며 지휘석에 올랐다. 그는 자신을 ‘끼인 세대’라고 평가했다. “옛날처럼 노골적으로 차별하진 않아요. 하지만 지휘를 배울 때도 그렇고 지금도 여성 지휘자는 드물어요. 종종 ‘내가 백인 남성 지휘자였다면 어땠을까’라고 푸념하죠. 동양인과 여성을 배척하는 문화는 여전히 공고해요. 그래서 더 악착같이 도전했죠.”

성시연은 2006년 게오르그 솔티 지휘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다음 해에 미국 보스턴심포니 126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부지휘자로 위촉됐다. 역량을 눈여겨본 정명훈 지휘자가 2009년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그를 데려왔다. 2014년에는 경기필하모닉을 이끌며 국공립 오케스트라 사상 첫 여성 지휘자 겸 예술단장이란 이력을 보탰다.

지휘한 지 올해로 20년째지만 그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했다. 연륜을 쌓아 단원들을 여유롭게 대하는 지휘자를 꿈꾼다고 했다. “명확하고 간결하게 지휘하는 건 배웠지만 아직 아우라가 부족해요. 한 번의 리허설만으로 단원들 마음을 끌어당기는 지휘자로 성장하고 싶어요. 여러 악단에서 객원 지휘를 하며 경험을 쌓아야죠. 그러고 나면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완주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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